A U D I O/Thorens TD124

토렌스 124 vs 가라드 301

봉탄 2008. 10. 18. 14:30

댄 로버츠 ( Dan Roberts )


                                   토렌스 TD-124와 가라드 301로 대변되는
                                   아이들러 드라이브 턴테이블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을 가진 사람    - 인터뷰어심병진



 심병진 씨가 미국에서 굉장한 장인(匠人)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내왔다. 평생 동안 토렌스 TD-124와 가라드 301만 다루어 온 엔지니어인 베이커스필드에 사는 댄 로버츠 씨와의 인터뷰. 그는 토렌스 TD-124의 망가진 모터를 완벽하게 복원해 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엔지니어로 가히 오디오의 인간문화재라 할 수 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정열적으로 토렌스와 가라드 제품을 수리하고 있는 로버츠 씨. 그를 만나, 토렌스 TD-124와 가라드 301에 대해 들어보았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오디오 잡지에서 ‘록포트 시리어스’(Rockport Sirius)란 턴테이블에 대한 평론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대당 7만4천 달러에 육박하는 엄청난 가격도 가격이지만, 카트리지 바늘과 레코드 면이 닿는 것만 제외하고는 모든 메커니컬한 부분이 공기 주입식으로 작동되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제품이라고 한다. 기사를 쓴 평론가는 이 제품이야말로 기존의 레퍼런스급 턴테이블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획기적인 걸작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 문제의 턴테이블로 인해 한동안 인터넷상에서 열띤 논쟁이벌어지곤 했는데, 오디오 역사에 길이 남을 구극의 턴테이블이라는 의견과 극소수의 갑부만을 위한 엘리트용 장난감에 불구하다는 의견 등이 팽팽히 맞섰던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는 아직 이 턴테이블을 시청해 보지 못한 관계로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지만, 음질의 우수성 여부를 떠나,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전세값에 맞먹는 제품이지만, 품질 보증기간이 겨우 2년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냉소를 금할 수 없었다. 몇 해 전 크렐의 사장이 ‘하이엔드 오디오는 죽었다’(Demise of High End Audio)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지만, 이는 소비자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오디오를 생산하는 메이커측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억원이 넘는 앰프와 1천 만원도 훨씬 넘는 케이블, 그리고 7만4천달러짜리 턴테이블, 과연 누구를 위해 이런 제품을 만드는지, 그리고 이런 부류의 제품에다가 전세계 오디오업계에 만연해 있는 난센스에 식상한 소비자들이 오디오 산업에 등을 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작년에 오디오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들어, 사용하던 기기들을 모두 처분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다가 올해초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 보자는 각오로 구입한 턴테이블이 토렌스의 TD-124 MKⅡ이다.

솔직히 필자는 그 동안 토렌스의 제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VPI나 린, 오라클 등 현대적인 턴테이블만을 사용해 온 필자에게 토렌스는 어쩐지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TD-124는 1957년 발매된 이후 전세계적으로 15만 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다. 필자 역시 TD-124 MKⅡ를 인터넷의 한 사이트를 통해 구입했다. TD-124 MKⅡ는 1966년도에 TD-124의 개량형으로 처음 시판되었다고 하니까, 8만 번대란 시리얼 넘버를 근거로 역산해 보면 약 3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구성이 뛰어난 제품이기 때문에 별 의구심 없이 구입했는데 불행히도 모터에 이상이 있는 제품이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전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안과의사로 토렌스와 가라드, 그리고 EMT의 전문가인 스테파노 파시니 박사를 통해 알게 된 스위스의 TD-124 전문 수리업체인 Schopper(www. schopper.ch)에 의뢰해 보았으나, 모터 고장으로 일단 작동이 멈춘 제품의 경우, 모터를 교체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새 모터의 수급이 여의치 못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필자는 스위스에 있는 토렌스 본사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TD-124 모터는 모두 품절이 되고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 미국의 토렌스 지사에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별 기대 없이 ‘토렌스 아메리카’에 연락을 했지만, 역시 예상대로 모터가 없으니 곤란하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는 게 아닌가. 울화가 치민 필자는 분풀이나 할 요량으로 세계 굴지의 아날로그 메이커의 고객 관리가 뭐 이 모양이냐고 한참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댔다. 가만히 듣고 있던 상대방은 고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서, 그리로 전화를 해보라고 하면서 이름과 전화 번호를 알려주었다.

이런 계기로 알게 된 것이 댄 로버츠(Dan Roberts) 씨다. 그는 LA에서 북쪽으로 160km 가량 떨어진 베이커스필드라는 농촌에 거주하는 일흔 살의 노인으로서 필자가 지금껏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오디오의 모든 분야, 특히 토렌스 TD-124와 가라드 301로 대변되는 아이들러 드라이브 턴테이블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과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었다. 필자의 TD-124를 새것처럼 고쳐준 인연으로 이제는 그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가라드 301턴테이블.


TD-124의 구동 메커니즘은 아이들러와 벨트의 혼합 방식

─ 베이커스필드는 LA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위치한 시골인데 계속 이곳에서 사셨는지요?

R: 태어난 곳은 텍사스 남부의 작은 마을입니다. 물론 이곳보다 더 시골이지요. 1950년 6.25 한국 전쟁 때는 육군으로 한국에 파병된 일도 있습니다. 미국에 돌아와서 제대한 다음부터 계속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 우선 자신에 대한 소개부터 간단히 해주시지요.

R: 저는 어린시절부터 특히 기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자동차 수리 센터를 시작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가 한국 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입니다. 김포의 비행 기지에서 2년간 복무하면서 군용 장비를 수리했습니다. 1952년 일본으로 전출되어서도 역시 비슷한 일을 했었습니다. 1953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제대한 다음에는 평소에 취미가 있던 활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만든 활은 디자인이나 품질면에서 아주 뛰어나서 세계 각국에서 주문이 쇄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1955년부터는 ‘패시픽 벨’이란 전화 회사에 입사하여 1994년 은퇴할 때까지 40년간 계속 엔지니어로 근무했습니다.

─ 그렇다면 오디오 사업은 어떤 계기로 손을 대시게 되었나요?

R: 1958년 저는 부업으로 베이커스필드에 최초로 오디오 가게를 열었습니다. 물론 친구와 동업을 했는데, 취급하던 제품으로는 매킨토시와 마란츠, JBL, 피셔, 가라드 등등, 당시로서는 LA에서도 보기 힘든 제품까지 모두 취급했습니다. LA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저희 가게로 물건을 사러 오곤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미국에서도 하이엔드 제품이라면 우리 가게가 최고였을 겁니다. 1978년 문을 닫을 때까지 20년 동안이나 오디오 장사를 했지요.

─ 토렌스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R: TD-124는 1959년 토렌스사에서 보낸 카탈로그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범상치 않은 물건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바로 30대를 주문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TD-124와 인연을 맺게 된 이래, 셀 수도 없이 많이 팔았습니다. 그 때문에 스위스에 있는 토렌스 본사에서 이사와 엔지니어가 저를 만나러 이 시골까지 온 적도 있었습니다.

─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R: 처음에는 사진만 보고 주문해서 다소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실제 물건을 뜯어보니 기계적인 완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평소 금속 가공이나 기계 조작에 전문가로 자처하던 제가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독창성이 넘치는 제품이었습니다.

─ TD-124의 기술적 특성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R: 잘 알려진 것처럼 TD-124의 우수성은 아이들러와 벨트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그 구동 메커니즘에 있습니다. 즉, TD-124에 장착된 모터가 작은 도르래(pulley)를 회전시키고 그 도르래와 고무 아이들러를 구동시키는 큰 도르래를 벨트로 연결함으로써 플래터를 회전시키는 구조입니다. 이 벨트 전동 장치 때문에 TD-124의 경우 상대적으로 관성이 낮고 따라서 소음이 적은 모터를 사용할 수 있지요. 모터의 소음이나 미세한 진동이 고무 아이들러를 통해 턴테이블로 전달되고 그 전달된 에너지가 카트리지를 통해 증폭되는 것이 소위 말하는 럼블 현상입니다. 제대로 세팅할 경우, TD-124는 럼블이 발생하기 쉬운 다른 아이들러 방식의 턴테이블과는 달리 벨트 드라이브 방식의 턴테이블처럼 정숙하게 구동됩니다. 이 점이 TD-124의 매력이지요. 하지만 TD-124의 음질이 뛰어난 이유가 꼭 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TD-124의 핵심적인 노하우는 아마도 정교한 베어링, 댐핑이 잘된 캐스트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몸체, 육중한 이중 플래터, 그리고 턴테이블 몸체에 나사로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는 암 베이스 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TD-124와 TD-124 MKⅡ의 차이점은?

R: 가장 큰 차이점은 TD-124의 메인 플래터가 철(cast iron)이었던 것에 비해 TD-124 MKⅡ의 경우 좀더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교체된 것이지요. 이는 쇠로된 플래터와 카트리지에 내장된 자석 사이에 상호 흡인 작용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데, 별로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카트리지를 TD-124에 사용해 보았지만 바늘이 플래터에 달라 붙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TD-124 MKⅡ보다는 TD-124를 선호합니다. 그 이유는 플래터의 울림이 적고 플래터의 육중한 무게로 인해 속도 유지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애호가 중에는 음질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TD-124 MKⅡ쪽이 좋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몸체의 색상과 속도 조절 스위치의 모양입니다. 그러나 디자인적 측면에서 보면 TD-124 MKⅡ 쪽이 조금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 TD-124의 경우, 턴테이블의 속도가 일정치 않아 고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회전수를 정확히 유지할 수 있습니까?

R: 그 점이 바로 TD-124의 유일한 취약점이지요. 실제로 TD-124를 판매한 지 얼마 안 되어 속도가 맞지 않는다며 수리를 부탁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벨트를 교체해 주거나 각 부분을 미세 조정해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속도가 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모터를 조금 개조시켜 주는 방식인데 자세한 내용은 비밀이기 때문에(웃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간단히 힌트를 드리면 관성이 약한 TD-124 모터의 토크를 약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모터 전문가로서 그 동안 군용, 산업용, 농업용 모터를 수도 없이 분해해 보았기 때문에 TD-124에 장착된 모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60년대부터 수많은 TD-124를 수리했지만 내가 개조한 모터를 장착한 제품들은 지금껏 단 한번도 속도가 틀어진 경우가 없습니다.

백해무익할 뿐인 롱암은 잘못 사용하면 치명적인 음질의 손상

─ 특히 TD-124와 매칭이 잘 되는 톤암으로 어떤 제품을 추천하시나요?

R: 저는 아직까지도 톤암의 디자인과 제작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회사는 SME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만일 다른 회사들이 ‘SME’란 이름을 자사의 브랜드로 도용할 수 있다면 모두 그렇게 할 것입니다. SME는 그만큼 독보적인 기술력과 창조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톤암을 직접 제작해 보기까지 한 사람으로, 그 동안 많은 톤암을 수리하고, 개조도 해보았지만 메커니컬한 독창성에서 SME를 능가하는 제품은 없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SME는 물론 모델 명이 30××로 시작되는 J자형 톤암을 의미합니다. 시리즈 Ⅴ나 Ⅳ 등의 현대 SME 톤암도 사용해 보았으나, 스타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가격도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입니다. 3009나 3012에 비해 음질은 다소 뛰어날지 모르나 SME의 매력은 상당 부분 희석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3009나 3012는 오디오 산업에서 케이블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이전에 나온 제품들이므로 사용한 케이블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내부선과 톤암 케이블은 교체해서 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현재 판매되는 3009나 3012의 경우는 이런 문제점들도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지요. 롱암인 3012의 경우 그 모양새가 아름다워 아직도 10개 이상을 소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장착해서 사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롱암의 치명적인 약점은 긴 암 파이프로 인해 카트리지나 암의 세팅이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왜곡이 과장되어 음질 손상의 원인이 됨은 물론, 레코드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세팅 방법을 모른 채 적당히 사용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실제로 저에게 튜닝을 해달라고 맡기는 고객 중에는 롱암을 장착한 사람이 많은데, 거의 세팅이 잘못된 상태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럴 경우 롱암을 사용해서 손해만 보는 셈입니다. 저는 60년대부터 3012를 개조하여 쇼트암을 만들어 사용했었는데, 얼마 전 일본 잡지를 보고 3010이란 모델의 쇼트암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턴테이블 베이스와 암 보드는 어떤 재질의 것이 좋을까요?

R: 지금은 수입이 금지되어 구하기 어렵게 된 브라질산 로즈우드가 가장 좋습니다. 나뭇결이 아름답고 밀도가 높고 무거워서 TD-124와 가라드 301용 베이스론 최적이지요. 구입이 불가능할 경우 유사한 재질의 코코볼로나 에보니도 좋습니다. 저는 3.5cm 두께의 원목을 사용하여 제작합니다만, 오리지널 베이스와는 달리 이중 서스펜션을 이용하여 진동을 극소화시키고 있습니다. TD-124나 가라드 301은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멋진 베이스가 필수적이지요. 가끔 가격을 고려해서 MDF에 무늬목을 입혀서 제작해 달라는 분들이 있지만, 이런 경우엔 대부분 거절합니다. 암 보드는 에보니 원목이 가장 좋지만 요즘은 편의상 1.2cm 두께의 아크릴을 주로 사용합니다. TD-124의 오리지널 베이스와 암 보드는 싸구려 나무로 만들어진 형편없는 것들인 만큼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토렌스 TD-124 턴테이블을 수리하고 있는 댄 로버츠 씨.

TD-124나 가라드 301은 잘 정비해서 사용해야

─ 현재 한국을 포함한 여러 아시아 국가에선 가라드 301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인터넷 오디오 관련 사이트에선 TD-124와 가라드 301 중 어느 것이 우수하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귀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유럽과 미국의 경우 TD-124를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고 아시아에선 가라드 301이 훨씬 우세한 느낌입니다.

R: 실제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만, 두 턴테이블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쪽이 더 뛰어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301은 TD-124에 비해 오래된 모델이지만 디자인이 심플하고 우아하며, 견고하고, 작동이 용이하지요. 물론 세팅이 제대로 되었을 경우 음질도 뛰어납니다. 이에 비해 TD-124는 구조가 복잡하여 사용자가 직접 수리하고 정비하기가 힘든 것이 단점입니다. 하지만 301과는 달리 암 보드가 댐핑이 뛰어난 몸체에 단단히 고정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여러 종류의 톤암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톤암을 베이스의 미세한 진동으로부터 격리시킬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TD-124에 비해 301의 경우가 베이스의 제작에 까다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계적인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TD-124가 진일보한 디자인입니다. 제가 가라드 301을 판매할 당시엔 레코컷이나 페어차일드 등의 유사 모델에 비해 그리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일본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수천 달러에 판매되고 있는 걸 보면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뭔가 특별한 게 있는 모양입니다.(웃음)

─ 수리하고 계신 기기가 아주 많은데 농담이지만 용돈은 충분히 버시겠군요?

R: 돈을 벌자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TD-124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기계이기 때문에 완전 분리하고 재조립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특히 조금 전에 말한 모터의 개조는 상당히 정밀한 것이어서 한나절이 족히 걸리는 작업이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이 일이 재미도 있을 뿐더러, 오른팔의 고질적인 관절염 치료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계속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원할 경우 SME나 오르토폰의 톤암도 완전히 분해해서, 필요할 경우 케이블과 베어링 등을 교체하여 주기도 합니다. 저는 완벽주의자입니다. 그 때문에 턴테이블과 톤암을 수리하는 데는 약 4주 가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수리비는 거저나 마찬가지입니다.

─ TD-124나 오르토폰의 경우 워낙 오래된 제품들이라 부품 수급이 어려우실 텐데요.

R: 다행히 20년간 오디오 장사를 하며 수리용으로 확보해 두었던 부품이 아직도 상당히 있습니다. 가장 마모가 심한 벨트와 댐핑용 고무(버섯 모양이기 때문에 ‘머시룸’이라고 부른다)는 재고가 바닥이 나 과거 앰펙스사에 유사한 재질의 부품을 납품하던 회사에 의뢰하여 제작한 특주품을 사용하는데 탄성이 오리지널보다 월등히 뛰어납니다. 그외 모든 부품은 필요할 경우 제가 모두 직접 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몸체의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훼손되었더라도 모두 새것처럼 복원해 줍니다. 모터도 99% 수리가 가능하지만 만약 심하게 손상되어 도저히 재생시킬 수 없을 경우엔 직접 제작합니다.

─ 화제를 좀 바꿔 볼까요? 사용하고 계신 기기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R: 저는 모노 시대부터 60년대말까지 오디오 기기에 관심이 많았던 탓으로, 사용해 보지 않은 기기가 없을 정도였지요. 수많은 제품을 두루 섭렵했습니다. 웨스턴 일렉트릭, 페어차일드, 마란츠, 피셔, 매킨토시 등등의 앰프들과, 알텍이나 JBL의 하츠필드와 패러건 등등의 스피커, 오디오 박물관을 연상시킬 만큼 많은 기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디오 기기뿐만 아니라 재즈를 너무 좋아해서 금요일 저녁이면 LA에 가서 일주일 내내 번 돈으로 새로 나온 기계와 레코드를 잔뜩 사 가지고 돌아왔지요. 그리고는 밤새는 줄 모르고 음악을 듣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밤새 음악을 듣느라고 남편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이혼을 두 번이나 당했지만(웃음)… 하지만 70년대말부터 오디오 기기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어지더군요. 그래서 가지고 있던 기기들을 모두 처분하고 그 돈으로 금속 절삭이나 가공 기계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지요. 지금 이곳에 있는 기계들은 대부분 그때 구입한 것들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날로그는 다소 귀찮고 번거롭게 생각되어, CDR나 MD로 녹음하여 듣고 있습니다. 한때 재즈 LP를 8,000장 정도 갖고 있다가 약 10년 전에 대부분 처분했습니다. 70년대에 일본에서 ‘블루 노트’의 라이선스판들을 수입하여 판매한 적이 있는데 지금 남아 있는 LP들은 모두 그때 수입했던 것들입니다. 현재 음악은 야마하 NS-1000 스피커에 소니 리시버로 듣고 있습니다만, 보시다시피 아직도 많은 기기들이 남아 있지요. TD-124가 약 10대 정도 되고, 가라드 301이 3대, 릴덱이 18대,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인 테크닉스 SP-10 MKⅡ 2대, 벨트 드라이브 방식인 마이크로 턴테이블과 럭스만 턴테이블도 2대 가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50년대부터 수집한 모노와 스테레오 카트리지가 옷장 서랍을 가득 채울 만큼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프로용 녹음 장비들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 끝으로 한국의 TD-124나 가라드 301 애호가들에 한 말씀 해주시지요.

R: 한국은 제가 6.25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남다른 인연이 있는 나라입니다.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제가 만난 모든 한국인은 참 친절하고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가끔 TV를 통해 접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습니다. TD-124나 가라드 301은 내구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잘 정비하면 평생 만족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입니다. 특히 벨트 드라이브 턴테이블에서는 느끼기 힘든 아이들러 특유의 스피드감이나 중량감, 그리고 생동감이 훌륭하게 전달됩니다. 하지만 두 턴테이블 모두 내재된 가능성을 이끌어 내려면 40년도 더 된 파워 코드와 내선들은 모두 교체하고 메인 베어링과 어셈블리, 샤프트, 그리고 아이들러 등등을 분해하여 깨끗이 닦고 마모된 것은 새것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TD-124는 완전히 분리하였을 경우 재조립이 쉽지 않기 때문에 분해하는 과정에서 부품들을 일일이 표시해두거나 그림을 그려가며 하는 것이 좋습니다.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주】

토렌스사는 1883년에 헤르만 토렌스와 그의 가족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초창기의 음향 관련 기기로는 에디슨 타입의 축음기와 디스크 커팅기, 그리고 라디오 등이 있었으나, 하모니카와 벨 등의 악기, 심지어는 면도기나 라이터까지 제조하는 등 상당히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던 것 같다.

토렌스는 1943년에 자사의 첫 레코드 체인저를 발표했는데, 판매 호조에 힘입어 본격적인 턴테이블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57년부터였다. 그해 TD-124와 1962년에는 아주 훌륭한 레코드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는 TD-226 등을 개발했다. 본격적인 턴테이블 전문회사로 자리잡은 토렌스는 사업 확장을 위해 ‘파이야르/볼렉스’란 회사와 합병하여 2년 후인 1965년도에 TD-150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동업 관계가 파기되면서 결국 EMT로 잘 알려진 프란츠 AG에 팔리게 된다 (정확히 1966년 7월 1일). 이후 토렌스-프란츠 AG로 회사명이 바뀌게 되어, 본사는 스위스에 남겨 둔채 제조공장을 지금은 하나의 전설처럼 되어버린 독일 라르의 ‘게라테베르크’로 옮겨, 같은 해에 TD-124 MKⅡ를 내놓게 된다.

그후로 주목할 만한 토렌스 턴테이블은 1968년의 TD-125와 1974년의 TD-126 등이 있다. 그리고 아직도 한국이나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레퍼런스’는 1978년에 발매된 것이다. EMT와의 하이브리드형으로 제작된 TD-524와, 그리고 창립 100주년 기념작인 TD-126 ‘센테니얼’은 각각 1982년과 83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상은 이탈리아의 안과 의사이며 토렌스와 가라드, 그리고 EMT 턴테이블의 전문가이자 현재 EMT에 대한 책을 집필중인 멋장이 스테파노 파시니 박사가 제공해준 것임을 밝혀둔다. 그의 웹사이트는 www.stefanopasini.i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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